꽁트

꿈꾸며 노래하는 중 늙은 이

청죽골 2005. 9. 14. 23:30

꿈꾸며 노래하는 중 늙은 이

 

 ‘애 늙은 이’라는 말을 들은 지가 있다.  아마도 ‘늙은 이 같은 애’라는 뜻일 께다.

어린 애라면 으례히 철없이 까불기도 하고, 철부지 행동으로 보이는 듯해도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해보고 싶은 희망과 꿈을 가지고 있는 반면, 늙은 이란 희망도 없고 변화도 싫어서 하루하루를 되는 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결국 애가 애답지 못하고, 꿈도 없고 희망도 없는 애를 ‘애 늙은 이’ 라고 부른다면,  꿈도 없고 희망도 없는 중년은 뭐라고 부르는게 좋을까?

 ‘중 늙은 이’라고나 할까부다.

 

 어릴 때 동네 백구마당 한 귀퉁이에서, 누런 설탕을 로 만든 국자에 녹여 누름판으로 눌러 만든 ‘8’자를 침발라가며 ‘포 뜨기’를 하면서도, ‘나도 언젠가는 설탕 녹여 소다로 부풀린 똥(?)과자라도 한 번 싫컷 먹어보려니…’ 하던 꿈이 있었건만, 이제는 체중조절 한답시고 그 꿈마저 흥미를 잃어 버린지 이미 오래고, 

동네 구멍가게 주인집 아들에게 딱 반입도 안되게 얻어 먹어 본 ‘카스테라’빵의 환상적인 맛을 잊을 수 없어, ‘커서 카스테라라도 실컷 먹어 봤으면…’ 하던 희망을 가졌었건만, 이제는 밀가루 빵 간식이라도 조금 먹을라 치면 더부룩해지는 속 때문에 마음 놓고 먹지도 못해 빵에 대한 소박한 욕심마저도 사라져 버린 지금, 나는 분명히 ‘중년 늙은 이’이거나 ‘늙은 중년’임에 틀림없다.

 

누군가가 꿈을 잃어버리면 늙은 이라고 했던가?

인생은 꿈이 사라져가는 과정이라고 한 청죽의 명상록이 떠오른다.

 

당신은 지금 무슨 꿈을 가지고 있는가? 

기껏 꿈이라야 철부지때 배고픔을 달래보려 가졌던 유치한 것이거나, 삶을 마무리할 때 오히려 짐이 되어버릴 세속적인 것들이지는 않는가?

삶에 시달려 꿈도, 희망도 없이, 마냥 스러져 가고 있지는 않는가?

 

우린 이제 꿈을 가진 중년이 되어야 겠다.

 

이왕 꿈을 가지려면 영원히 꾸어도 부끄럽지 않고, 끝없이 꾸어도 너무 좋아서 평생을 꿈이야기만 하면서 살아도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을 영원히 가치있는 그런 꿈을 꾸어야 겠다.

신이 인간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영원한 꿈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 아니던가?

어느 시인이 읊은 싯귀에서 창조주가 모든 것들을 제철에 따라 아름답게  창조한 것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전도서 3 11 : He has made everything beautiful in its time. He has also set eternity in the hearts of men)는 신에 대한 찬양이 우리의 것이 되어, 

‘희망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늙은 이’가 아니라, ‘꿈꾸는 젊은 영혼’이 된 것을 소리 높여 노래하는 '꿈꾸며 노래하는 중 늙은 이'가 되려한다.

'꽁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모님, 제 설교 어땠어요?  (0) 2006.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