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사모님, 제 설교 어땠어요?

청죽골 2006. 3. 14. 14:22

- 사모님, 내 설교 어땠어요? -

 

예고 되지 않았던 설교자가 단상에서 소개되었다.

앞머리도 시원스레 벗어지고 키도 180 센티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훨칠한 분이었다.

목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그다지 크지 않은 교회당의 공간을 완전히 꽉 메울 정도였는데, 그런 그 분의 성량은 마이크 없이 단상 의자에 앉아서 찬송가를 부를 때 참으로 대단한 성량을 가졌구나 라는 사실을 재삼 확인할 수가 있었다.

테너 파트의 화음소리가 어찌나 큰지 100명 가까운 교인들의 합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온 교회당을 쩌렁쩌렁 울렸고, 그 우렁찬 목소리의 주인공이 70이 넘은 노인 장로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내심 깜짝 놀라며 화음의 주인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작 당신은 천연스럽게 그 화음의 굉음(?)을 즐기고 있는 듯 지긋이 눈을 감기까지도 하는 것이었다.

 

설교 중에 자신이 전직 대한적십자사 총재였다는 이야기, 시중 신문에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는 이야기, 총재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던 이야기, 앞길을 알지 못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한걸음씩 인도하여 주실 것을 구하라는 내용, 가련한 북한 인민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되지 않겠느냐는 등의 내용이 전달되었고,

설교단상을 거의 일년 열 두 달 내내 독차지(?)하고 있는 담임 목사의 늘 같은 스타일의 설교를 들어오던 교인들에게는 참신한 내용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그런지 그 분의 설교내용에 동감하는 분위기가 역력하게 느껴진 예배시간이었다.

 

설교 기법도 세련되어 음의 높낮이며, 눈의 시선, 언어의 세련미 등이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었고, 언제부턴가 우리 한국 기독교회의 설교단상이 전문 목사군()의 독점물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좀처럼 보고듣기가 쉽지 않은 평신도 출신의 설교자였던 것이다.

 

설교가 끝나고, 예배의 송영찬송이 울려 퍼진 후, 그 분은 문 앞에서 일일이 몇 안 되는 신자들과도 악수를 자청하면서, 더욱 좋은 인상을 깊게 심어주고 계셨던 것이다.

 

. 그런대로 제법 벗겨진 나의 이마 덕분에 교회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영광을 가지게 되었다.

 

 장로님, 원래 고향이 이 곳이었습니까?

 , 여기가 고향이 아니고, 이 지역에 교회 어른이 없으니 오셔서 어른 역할 좀 해달라고 해서 오게 되었지. 원래는 고향이 여기가 아니지.

스스로 교회의 어른임을 자처하시면서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그런데 함께 오신 사모님의 모습은 조금은 의외로 느껴졌다.

조금전 예배시간에도 일어나서 사모님으로 소개까지 되었는데,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 그리 풍족하거나, 대단한 분의 부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여유와 편안함은 없어 보였고, 그런 사모님의 얼굴을 식당 테이블 바로 앞에서 똑똑히 확인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코앞에서 느껴본 사모님의 얼굴은 연세 들어 활기가 없어 보이는 단순한 노인의 그런 분위기라기 보다는 왠지 많은 갈등과 불만이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듯, 얼굴의 죽은 깨가 화장으로 가리워진 것 같은 어두운 인상을 주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남편의 위신만큼은 철저히 세워 주어야 한다는 한국 고유의 충직한 아내상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교회 목사님의 사모가 식판을 들고 우리 식탁 바로 옆자리에 앉았고, 예의 그 장로님이 사모에게 반가운 듯이 인사를 나누었다.

 

 사모님, 안녕하셨어요? 제 설교 어땟어요? 마음에 들었어요?

 

은혜(?)가 한꺼번에 싹 가셔 버린 그 한 마디에 나는 시금치 나물만 어그적 어그적 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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