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으로 보는 세상

웰빙(Well-being)이 뭐길래...

청죽골 2006. 2. 13. 08:46

웰빙(well-being)이 뭐길래

 

요즘 온통 웰빙문제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인 양 온 세상이 떠들썩한 것 같다.

나이도 모두가 50대를 지난 흔히들 말하는 사장님족들의 모임에서도 웰빙이고, 아니면 나이 꽤나 든 대기업의 임원 간부급들의 모임에서도 웰빙 이야기가 주된 주제가 된다.

웰빙 잘하고 있는 의사들의 모임에서도 그렇고, 심지어는 인간의 영혼문제와 영원한 세계를 이야기하는 교회안에서 조차도 웰빙문제로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는 것까지도 듣게 된다.

그러면서 노인의 나이가 되면 웰빙을 누려야 되고 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이 돈이고 건강이란다. 어떤 이는 인생을 마지막까지 즐기기 위해서 요사스런 약이며 음식들을 권하기도 하고, 입만 떼면 돈버는 이야기며, 해외여행이고, 즐기는 일을 위해 이 세상의 마지막을 장식할 것처럼 떠들어 댄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대로, 없는 사람이면 없는 사람대로 웰빙을 이야기하고, 그 결론은 웰빙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여유가 있어야 하고, 여유를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는 한가지 결론으로 모이게 된다.

웰빙(well-being)이 뭐길래 이다지도 모든 사람들이 마치 삶의 목적 자체가 웰빙인 것처럼 이다지도 시끌벅적할까?

당신은 웰빙의 참 뜻을 한번쯤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어디 한 번 보자.

웰빙(well-being)이 영어에서 온 말이니 영어의 사전적인 뜻을 찾아 보자.

어떤 사전에 인간이나 사물이 처하게 되는 만족스런 상태(the satisfactory state that someone or something should be in)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니 행복하고, 건강하며, 안전할 뿐 아니라,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는 상태 같은 경우가 모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 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웰빙의 신기루가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것도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웰빙에 대한 생각과 이를 구하려는 태도는 분명히 어느 한 쪽이 잘못되어 있음을 본다.

진정한 웰빙이 무엇인지 모르고, 껍데기 웰빙만을 구하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웰빙은 분명히 만족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만족의 의미가 문제인 것이다. 세상사람들은 만족을 절대적인 기준을 두고, 돈 몇 억 원이상, 어떤 음식먹고, 어떻게 죽고 예를 들면 자다가 조용히 죽는다든가 등의 기준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게 정말 웰빙일까?

그런데도 그들은 왜 하나같이 얼굴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거만하고 오만불손하여 먹고 즐기기만을 탐하는 사람들처럼 보이는지 모르겠다.

또 어떤 이는 설령 겉은 행복해 보여도, 삶에 대한 회의와 외로움의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들중 많은 사람들은 참된 웰빙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아니면, 알아도 찾을 수가 없거나, 찾을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참된 웰빙은 만족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행복이란 느끼는 것이지 얼마나 많이 가지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사람이 건강만을 찾아 헤매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많이 본다. 병약자가 살아나기를 포기하고서야 참된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 경우와 매우 대조적이다. 살아남기 위해 최후의 순간까지도 병상을 전전하며, 온갖 치료를 받다가 속절없이 죽어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웰빙을 추구하려던 사람들은 아닌지?

세상의 웰빙이 아니라, 영혼의 안식과 인간 내심의 영적 만족을 추구하는 영적 웰빙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죽음을 맞는 모습과도 비교해보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으리라.

돈을 찾아 헤매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과 동시에 재산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부류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 상상이나 해보았는지?

돈많은 노인이 요양병원에서 쓸쓸히 노년을 보내면서, 자신을 찾아주는 이름 모르는 한 사람의 손을 잡고 한없이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외로운 눈빛의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나 있는지?

영적 웰빙(Spiritual Well-being)을 철저하게 추구하였던 사도 바울(Apostle Paul)을 생각한다.

그는 육신적인 웰빙(Physical Well-being)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창이나 멀게 살아가신 분이지 않았는가?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아래의 편짓글을 통해서, 그 분의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영혼 그 모든 것이 영적 웰빙에 올인(all-in)되어있음을 보면서, 육적 웰빙만을 생각하는 오늘의 세태를 넘겨다 보게 된다.

나는 지금 빈궁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환경에서라도 만족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는 궁핍한 상태에 처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풍부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잘 먹었을 때나 굶주렸을 때나, 또는 풍족할 때나 궁핍할 때나 어떤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나는 내게 힘을 주시는 그 분(하나님)을 통해서라면,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습니다.(빌립보서4:11-13)

I am not saying this because I am in need, for I have learned to be content whatever the circumstances. I know what it is to be in need, and I know what it is to have plenty. I have learned the secret of being content in any and every situation, whether well fed or hungry, whether living in plenty or in want. I can do everything through him who gives me strength.( Philippians 4:11-13)

 

결국 웰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웰빙이 되어야 하고, 진정한 웰빙은 자신의 영원한 구원을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다윗왕은 시편에서 주님의 죄없다는 변호를 받는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소리를 높힐 것이며, ‘하나님은 그 종의 웰빙을 기뻐하시는 분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May those who delight in my vindication shout for joy and gladness;
may they always say, "The LORD be exalted,
who delights in the well-being of his servant." Psalm 35:28(New International Version)-

 

또 다른 한편으로는 죄지은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의미에서 웰빙이 없고, 또 그렇게 되기를 구하지도 말 것을 경고하고 계시는 것을 본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계시를 받고 믿는다고 하는 무리(이스라엘 민족)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경고를 기억하도록 하자. 주님은 그들에게 이런 무리의 웰빙을 구하지도 말라고 하신 것을. 그리고,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계신 것이다. -Then the LORD said to me, "Do not pray for the well-being of this people. Although they fast, I will not listen to their cry;." Jeremiah 14:11,12(New International Version)-

 

당신은 지금 어떤 웰빙을 찾아 헤매고 있으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