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사랑이 없다?

청죽골 2006. 10. 30. 18:02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사랑이 없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  중에서도, ‘사랑’을 대표적인 단어로 나타낼 수 있는 종교로는 아마도 기독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까지도 국제적인 대규모 자선구호조직으로는 기독교계 조직밖에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어떻게 보면, 사랑이라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엿볼 수 있는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실제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사랑에 관한 단어와 표현이 많이 보여지고 있다. 물론 사랑이라는 단어가 ‘사랑’(Love) ‘은혜’(Grace) ‘자비’(Mercy) ‘긍휼’(Kindness) 등의 말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 모든 단어들은 결국사랑의 의미와 일치하거나 사랑의 의미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고, 어떤 곳에서는 아예 창조주 신, 그 자체를 ‘사랑’<요한1서4:16>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God is love. <1John 4:16>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질서는 반드시 필요에 의해 창조된다.
또한, 이러한 창조된 질서에는 반드시 창조의 동기가 되는 선(Goodness) 즉 피조물에 대한 사랑이 내재되어 있음도 알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존재하는 것의 시작이 사랑이라는 말이고, 그 끝도 창조주의 사랑이 실현되는 모습이어야 하는 것인데, 그러한 사랑이 완벽히 실현되는 모습이 곧 ‘천국’으로 표현되는 세계이며,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것과도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이다.’(God is love.)는 선언이 이러한 배경에서 말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창조주의 품성인 사랑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서  흔히들 ‘사랑의 장’이라고 하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그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거기에서 우리는 얼핏 보기에 선뜻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의 속성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다’(고전13:3) <If I give all I possess to the poor and surrender my body to the flames, but have not love, I gain nothing. 1Corinthians13:3> 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목숨을 남을 위해 희생하는, 인간으로서는 최고 수준의 숭고한 사랑까지도 사랑이 아닐 수 있고, 소유한 전 재산을 불우한 이웃에게 줄 정도로 인간의 모든 소유욕을 벗어던진 성인과도 같은 사랑을 가진 사람조차도 자기 자신은 아무 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한다면, 도대체 어떤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란 말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완벽한 사랑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그렇게도 애타게 온갖 노력과 물질을 쏟아 부으면서까지 안간 힘을 다하고 있는데 말이다.

 

결론부터 미리 이야기하자. 이 세상에는 분명히 사랑없는 사랑이 있고, 그러한 사랑은 겉모습이 아무리 숭고하다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소망없는 믿음’이 진정한 믿음이 아니듯이, ‘소망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다.
믿음과 사랑은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부터 솟아나야 그것이 진정한 믿음이요, 사랑이 될 수 있다는 선포인 것<골로새서1:5>이다.  The faith and love that spring from the hope that is stored up for you in heaven... <Colossians 1:5>


다시 말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있다고 하나, 저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날 소망에 대해서는 ‘모른다’ 거나 아니면 ‘죽어봐야 알 수 있다’는 등의 불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요,
사랑은 하되, 진정한 사랑이신 하나님과 참소망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소망을 심어주지 못하는 불완전한 사랑의 모양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다. 
영원한 세계와 연결되지 않은 사랑의 모습, 영원한 소망이 되신 구원주 예수그리스도가 함께하지 않는 사랑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조금의 유익이 있다해도, 사랑을 받은 사람이나 베푼 사람 모두에게 결국은 아무런 유익이 될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부자로 한 평생을 산 사람이 소망을 모르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가난하게 한 평생을 살면서 영원한 소망을 가지고 산 사람보다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불쌍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천국에 대한 참소망을 지닌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게 사랑과 함께 참소망을 심어주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남아있는 법인데, 그러나 이들 중에 제일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13:13> And now these three remain: faith, hope and lov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love.<1 Corinthians 13:13>는 사실과 함께, 사랑의 본체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란 사실을 알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