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하하, 그래 그래 -수양회에서 만난 어느 형제의 감명-

청죽골 2007. 8. 14. 11:17

올 여름휴가 동안은 며칠을 쪼개어 하계수양모임에 참여하기로 하고, 멀리 남해안의 어느 유스호스텔에서 34일의 일정을 보냈다.

같은 방에 여러 명이 함께 하는 터라 늘그막에 불편한 점은 각오했지만, 그것보다 혹시나 참석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싶었던 마음에 역시 별 얻은 것이 없구먼. 하는 말이 나오지 않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더 값진 뿌듯함을 안고 오게 된 것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바로 옆자리에 함께 하였던 그 사람은 나 보다 나이가 세 살 위였고, 몇 년 전에 뇌일혈로 쓰러진 후 회복되면서 왼쪽 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고 했다.

말도 떠듬거리며 어눌했고, 좀 이상하게도 높임말을 사용하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했다.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도 의례히 하하 하하 그래, 그래.로 인사를 한다.

아무한테라도 그런다. 그 방에서 연세가 제일 많은 사람에게도 예의 하하 하하 그래, 그래.로 인사하자, 그 양반이 오해를 한 듯, 왜 아무한테나 그래 그래 하시지요?라고 약간 불쾌하듯 말하자 이 형제 왈, 내가 높임말을 잘 못써.라고 안타까운 듯 변명한다. 높임말이 발음하기도 어렵고 반쪽이 마비된 상태에서 혀 놀림이 여간 힘든 게 아닌 듯했다.

 

조용히 둘 사이에 이야기가 오갔다.

대기업의 임원이었다가 지금은 대학교수이자 작은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는 간단한 내 소개를 대충 마치고서 그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뇌출혈은 혈압이나 비만과 관계되기 보다는 그 집안 내력이라고 했다. 자기 형도 그렇게 쓰러지셨단다. 몇 년 전에는 성경에 대한 열정으로 그 어려운 히브리어까지도 몇 달 동안 부산서 창원까지 오가며 공부했으나, 쓰러지고 난 후 지금은 뇌의 기억 부분이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얼마의 기간 동안 일어나고 배운 상당한 부분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 높임말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다.

 

대화를 할 땐 이해는 하면서도 시간이 좀 지나면 기억을 되살리지 못한단다. 그래서 늘 수첩을 가지고 다닌단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수첩에 기록한 기도 제목들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기도를 하신단다. 아프리카며, 중동이며, 또 다른 지역의 선교사를 위해 매일 기도를 하는데, 하루에 3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했다.

기도의 대상은 TV나 책자 등에서 보여지는 내용에서 뽑아낸다고 했다.

 

, 이 숭고한 기도의 힘!

가슴이 뭉클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 그 양반의 하하 하하 그래 그래가 연방 터져 나왔다. 자연히 내 입에서도 하하하 하하하 그렇습니까?라고 맞장구 치는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내게도 이 같은 건강의 이상이 닥치게 된다면, 이 형제처럼 웃으면서 세상사람을 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싶었다.

 

이른 아침이면 몸 성한 내가 일어나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기도하며, 성경을 통해 묵상하는 모습이 성스럽기 조차 했다.

마지막 날, 각자의 짐을 꾸려 집으로 오던 날, 조용히 그 분의 손을 잡고 기도를 부탁드렸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아무에게도 부탁해보지 않은 기도제목이다.

 사랑하는 우리 둘째 아들의 신앙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자신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내게 ?하고 놀라는 그 양반의 눈을 뒤로 한 채, 아쉬운 발걸음을 뗄 수 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을 마음속으로 기약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