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최면술사가 TV에 나온다. 예외 없이 사람의 눈을 가리고 최면술을 건다. 놀랍게도 최면술에 걸린 사람이 잊혀진 과거의 생생한 현장으로 들어가서는 울기도 하며, 웃기도 한다. 지금의 심적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최면상태에서 옛날의 그 어떤 일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신기하게도 지적해내는 것이다.
또 어떤 최면술사는 세워놓은 사람을 뒤로 드러눕게도 하는 모습도 본다. 아무리 보아도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라 ‘속임수가 아닌가?’ 라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그건 아닌 듯하다. 참 우스꽝스런 일이긴 하지만 또, 어떤 넘어진 사람은 ‘옆 사람이 넘어지니 나도 같이 넘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이런 최면술을 잘 이용하는 사람이 점치는 사람이고 또, 잘 이용당하는 사람들이 점을 보러가는 사람들이다.
점을 보러가는 사람은 점치는 사람에게 간다는 그 자체가 이미 최면의 상태로 스스로 빠져 들어갈 준비가 잘 된 사람이다. 점성가에게는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또 그들에게서 예언이나 부적 등의 신기한 처방을 받아야겠다고 잔뜩 최면이 걸린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니 점치는 사람을 만나면, 스스로 자기의 사정을 털어놓거나 표정이나 행동으로 자기 문제를 나타내게 되고, 점치는 사람은 능수능란하게 그들을 녹여 놓는 말과 처방을 내어놓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회 안에서도 이런 최면술을 이용한 심령부흥사들이 날뛰는 모습을 보니, 정말 경악스럽다.
‘저 목사님은 성령을 불어넣어 준다’는 헛된 최면에 걸린 많은 사람들이 곧잘 그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마치 점치러 가는 미신 신봉자들처럼.
사람을 불러 세워놓고, 눈을 감기고, 고음의 야릇한 음악이나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는 분위기를 만든 후에,
고함을 지르며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외친다.
극도의 혼란과 마이크 소리 등에 정신이 혼미해진 사람은 목사가 머리를 미는 힘이나 팔을 잡고 미는 힘에 의해 뒤로 넘어진다. 이런 일을 흔히 당하거나 그런 것을 곧잘 보아온 사람이 미리 뒤에서 넘어질 것을 대비해 몸을 받혀준다.
또 어떤 때는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굉음을 지르면서 아픈 부위를 손으로 짓누르고, 그 환자는 뜨거운 불이 속으로 들어오는 듯 몸부림을 친다. 그러고는 얼마 후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냥 일어나 앉고서는 성령이
언제 들어왔느냐는 듯이 깔깔거리고 재잘거리며, 여느 세상 사람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마치 성령님이 장난치듯이 교인 한사람을 한방 탁 치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처럼 말이다.
신령한(?) 목사라는 최면에 잔뜩 걸린 교인이 분위기와 시끄러운 소리의 혼미한 상태에서 최면술에 걸려 넘어지고 또, 이상한 체험을 한 듯 말하면서도 그 영혼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체, 항상 공허한 그대로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그런 류의 사람은 항상 그런 최면의 신비함을 찾아 부흥회마다 쫓아다니게 되고, 심령부흥사들은 계속 그들을 이용하여 헌금도 받고, 강사료도 받으면서 호사를 누리는 것이다.
그들이 저지르는 성령임재라는 은사는 신약성경의 그 어느 곳에도 없는 은사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흉내를
내려거나, 사도 바울의 안수기도를 흉내 내려는 것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언급해보자.
결국 그들은 거짓 선지자들이고, 이런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성경말씀의 경고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직접 그리고 준엄하게 예언하신 말씀이 너무나도 실감이 간다.
<마태복음7:21~23>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은 분명히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의 날, 주님 앞에서 정말 참담한 하소연을 하게 되고, 주님은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처참한 거절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님은 그렇게 오시고, 그렇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리고 무슨 장난치듯, 탁 넘어지게 하고, 또 언제 성령을 받았느냐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맹맹한 상태로 되돌아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심령부흥사가 실실 웃어대며 마이크로 고함치면 내려오시는 분도 물론 아니다.
이 모든 것이 불법이요, 그들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성령이 아닌 불의 심판을 받을 대상인 것이다.
사도 바울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갈라디아서 3:2>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분명한 것은 성령님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을 때에 오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14:16,17>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성령님은 무슨 야릇한 음악이나 어지러움 속에서 나타나시는 분도 아니요, 사악한 인간들의 고함으로 임하시는 분도 물론 아니다.
질서의 하나님이시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무질서는 사탄이 춤을 추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바로 이러한 무질서라는 사탄의 무대에서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성령님이 이 세상에서 하시는 일은 분명하다.
<요한복음16:8>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곧 성령님의 역사란 죄와 의(義) 그 자체이신 예수님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완성된 죄에 대한 심판을 증거 하시는 것이고, 성령님은 바로 이런 구원의 사역과 성도들이 천국에 이를 때까지 늘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이다. 무슨 도깨비처럼 교인을 탁 치고 가시는 그런 존재일 수가 없는 것이다.
<사도행전19:6>에는 사도 바울이 ‘안수하매 성령이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도 바울의 안수기도는 하나님께 성령의 능력을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보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 것이었고, 이런 사도의 기도에 응하여, 성경과 복음이 기록되지 않은 그 시대에 말씀 대신에 성령의 능력으로 방언(tongues, other languages:다른 나라 언어)도 하고, 예언도 하게 하셨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셨던 것이다.
사도 바울의 기도는 거짓 심령부흥사들이 오디오 기계로 연출하는 혼란과는 완전히 다른 거룩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행한 성령의 임재하심과 각종 은사로 나타나는 성령의 역사하심은 점차 완성되어진 복음의 말씀으로 명문화 되었다. 이 복음의 말씀이 곧 성령의 역사하심의 결과요, 성령의 실체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성령님은 말씀과 함께 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런 성령의 활동은 다음 성경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에베소서3:3~5>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사도 바울이 간단히 기록한 것(3절)이 곧 복음 서신이요,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비밀(4절)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제 사도와 선지자시대의 성령님의 역사하심같이 죽은 자가 살아나고, 독사의 독이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그런 역사가 오늘날의 세대에는 그렇게 나타나지는 않는 것이다. 이어서 <에베소서3:6>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고 함으로써 이제 복음 곧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확실히 선포한 것이다.
복음의 말씀이 없는 성령역사는 거짓이요, 속임수다. 영혼의 구원과 관련 없는 혼란한 부흥 쇼의 무대는 사탄의 춤판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실제로도 목사의 탈을 쓴 거짓 부흥술사들은 형편없는 성경의 지식을 가지고 있거나, 제멋대로의 말씀 해석으로 어리석은 교인들의 심령을 더욱 혼미하게 만드는 것이다.
말씀 없는 신앙이 이런 미혹에 곧잘 넘어가곤 한다. 이제 더 이상 속지 말자.
오로지 말씀을 통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갈구하자.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 주님의 엄하신 사랑의 경고를 마음속에 되새기도록 하자.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로마서 8:16>기 때문에 내 영혼이 정말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는가를 성령님께 물어보고,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자. 때가 늦기 전에.
이것이 바로 성령님이 역사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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