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좋은 사람으로 나타나는 비결

청죽골 2015. 3. 31. 07:46

탕자의 비유,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비유 등 세상을 향해서 기독교를 대표하는

몇 가지의 유명한 비유, 씨 뿌리는 비유 등이 있는데, 그 중 하나인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 보시기에 착하고 좋은 마음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물론 하나님 앞에서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예외 없이 우리 모두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누가복음 8:15에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는 내용이 나온다. 이 말씀은 씨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릴 때, 길가나 바위밭, 가시떨기밭과 좋은 땅에 씨를 뿌렸고, 그중에서 오직 좋은 땅에 뿌려진 씨앗만이 백배의 결실을 거두었다고 하시면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비결을 분명히 가르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우선 15절의 내용을 통해서 착하고 좋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을 보자. 좀 더 분명한 내용을 보기위해 영어성경(NIV)과 헬라어 성경의 내용을 참조로 한다.

 

우선 영어성경을 원문(NIV)에 충실하게 번역을 하면 이렇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고귀하고 선량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유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간직하고, 그리고 끝까지 견뎌냄으로써 어떤 결실을 거두는 사람들이다.(But the seed on good soil stands for those with a noble and good heart, who hear the word, retain it, and by persevering produce a crop.)

여기에서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은 착하고(Noble), 좋은 마음(Good heart)을 지닌 사람들을

말하는데, 다시 말하면, 고상하면서도 선량한 사람들의 모습을 말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그렇고 그런 모습의 힘없는 존재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고상하면서 고고하여,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도 귀한 인격을 갖춘

모습인 것이다. 이것을 우리말 성경에는 착하고 좋은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착하고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여기에 그 비결을 기록하고 있다.

첫째, 말씀을 듣는 사람이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할 시대는 구약성경 필사본이 아주 귀하게 전해져 왔으므로 성전이나 공회당에서나 극히 일부분의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대였다. 여기서 말씀을 듣는 사람이라고 하였지만 오늘날은 듣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읽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 듯하다. 듣는 것이 때로는 전하는 자의 편견이나 자의적 해석의 위험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말씀 중심의 교회생활과 성도의 교제, 말씀을 듣고 배우기 위한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할애할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다. 우리는 지킨다고 번역하였지만 NIV에는 'retain it'이다. 말씀을 간직한다’ ‘지니고 다닌다는 뜻이다. 무엇을 율법처럼 힘들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은혜 받은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는 귀한 모습을 말한다.

말씀을 마음속에 간직하되, 언제,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말씀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의미.

기쁠 때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고난을 당하거나 슬픔에 빠졌을 때는 말씀으로 위로와 힘을

얻는 고귀한 믿음의 모습을 말한다.


끝으로 인내로 결실하는 자이다. 여기의 인내에 대한 헬라 원어의 뜻을 보면 이 내용을

더욱 분명히 알 수 있다. perseverance(견뎌낸다)라는 의미로서 꾹 참고 참아낸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헬라어로는 ύπομονƞ(히포모네)이다. ‘~아래에 머무르다’(under remain) 혹은 ‘~의 뒤에서 평안하게 거닐다(behind tarry)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날개아래 머무르고, 그분의 뒤를

평안한 가운데서 따라가는 것이 인내라는 말이다. 그곳이 험한 골짜기든 거친 들판이든, 목자를 따라가기만 하는 양떼처럼 되라는 말이기도 하다.

내가 발버둥치고, 견디고,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아래 평안히 거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내 뜻이 아니라 그 분의 뜻을 알려하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면서, 위로 받고 힘을 얻는 믿음의 삶이 인내인 것이다.

열매는 씨앗 자신의 행위의 결실이 아니다. 믿음으로 하나님께 인도 받는 삶이 열매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주님 앞에서 내세울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내가 열심히 해서 맺는 열매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항상 마음에 품고, 그 뜻에 따랐을 뿐인데, 열매가 맺어지는 그런 삶을 말한다.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은 고귀하고 착한 마음을 지닌 성도가 말씀을 읽고 듣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말씀과 함께 하지 않는 결실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말씀을 항상 간직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결실은 기대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묵묵히 따라갈 때 하나님께서 절로 맺게 해주시는 것이 된 결실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15:5에서도 분명히 밝히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말씀을 항상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그 말씀이 우리의 양심에게 명하시는 것들을 순종하여야 한다.

그 길이 가시밭길이든, 불꽃가운데든, 아니면 죽음의 길이라 하더라도 그분의 뒤에서 묵묵히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ύπομονƞ(히포모네)를 기억하자.

그분의 뒤에서 두려워하지 말고, 그분만을 믿고, 평안한 심령으로 따라 가기만 하자. 그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고귀하고, 착하고, 좋은 마음을 지닌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날 천국문 앞에서 우리 주님께서 누구누구야, 나를 따라오느라 수고했다.’라고 칭찬하실 때, 우리는 엄청난 기쁨으로 몸을 떨게 될 것임을 꼭 기억하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