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돌아온 탕자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유

청죽골 2006. 6. 12. 18:08

돌아온 탕자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방탕한 아들(탕자:Prodigal)은 이방인이고, 맏아들은 율법만 내세우는 이스라엘 민족이며, 아들의 귀가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가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내용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The Parable of the Lost Son).

그러나, 한 번 결신하고 난 후 구원을 확신한다고 하는 신자들이 적어도 자신은 회개를 하였으니, 다시는 탕자가 될 수는 없다는 자만심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돌아온 탕자가 또 다시 돌아와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기로 하자.

물론 구원을 확신한 그리스도인이 또 다시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 하더라도, 방탕한 아들의 위치에는 언제든지 다시 설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늘 맏아들과 탕자인 둘째 아들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가출한 동생의 귀가를 축하하려는 아버지에게 반항한 맏이는 나쁜 사람처럼 받아들여지고, 적어도 그런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교훈을 가지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탕자의 아버지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다는 그 한가지 생각으로 인해 인간이 그 아버지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고, 이러한 고정관념은 우리에게 던져지는 더 풍부한 교훈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회개한 탕자도 언제든 다시 탕자의 자리에 설 수가 있음을 알자.

돌아온 탕자가 다시 돌아와야 할 때가 너무나 많다. 집 나간 탕자인 둘째 아들이든, 아버지를 모시면서 집을 지키고 있었던 맏아들이든, 모두가 같은 아버지의 자녀라는 사실도 주의하여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탕자란 곧 하나님이 세상에서 허락하신 그 어떤 것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재산을 자기 몫으로 가져가 (탕진해)버리는 타락한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Father, give me my share of the estate.' Luke15:11)

세상의 명예와 재산과 행복과 권력과 같은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에게 받기를 요구하는 순간 그는 이미 탕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고,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에게는 타락과 낭비와 후회의 앞날이 기약되어 있는 영혼이 되는 것이다.

 

한편 맏아들의 모습을 보자. 그가 어디 잘못된 것이 있는가?

탕자처럼 방황하지 않고 아버지 곁에 있어준 것만해도 효도요, 가장 모범적인 아들일 수 있지 않은가?

돌아오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며 품에 안아주는 아버지의 참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아버지 재산을 주인으로서 관리한 것이 아니라 종처럼 관리해 온 이 두 가지만 빼고서는 말이다. (But he answered his father, 'Look! All these years I've been slaving for you and never disobeyed your orders. Luke15:29)

모든 불평은 종의 속성에서 비롯되는 법.

그 형은 바로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종으로서 아버지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락하신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라는 생각이 없이는 허랑방탕한 아들을 축복하고 환영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는 내가 힘들여 모은 재산이니 내 것은 어디 갔는가? 고 항의하는 또 다른 너무나 착실한(?) 탕자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야 한다.

 

아버지의 모습은 곧 하나님의 모습이고, 믿는 이들이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면, 탕자의 아버지의 모습이 곧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잘못을 용서하는 모습, 재산에 연연하여 자식을 몹쓸 인간으로 몰아가지 않는 모습, 탕자가 가출한 그 순간부터 자식을 애타게 기다리며 해거름이면 문밖에서 돌아올 영혼을 맞으려 가슴 졸이는 모습, 멀리서 아들을 보고 측은한 동정심으로 가득 찬 아버지는 맥없이 돌아오는 아들에게 달려가 두 팔로 감싸 안고 키스를 하는 모습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was filled with compassion for him; he ran to his son, threw his arms around him and kissed him. Luke15:20), 아버지를 위해 열심히 일한 대가를 기대하며 불만에 차 있는 큰 아들을 집밖까지 나가서 절절히 달래주시는 모습("The older brother became angry and refused to go in. So his father went out and pleaded with him. Luke15:28).               이것이 화해와 용서를 통해 하나되게 하시는 사랑의 아버지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모습을 닮도록 하자.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이해하며, 모든 것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품에 안을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말이다.

가정에서도 그렇지만, 교회는 물론, 회사와 같이 내가 몸담고 있는 어떤 조직에서든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야겠다. 더욱이나 금전적 이익을 위해 부드러운 모습을 훼손하는 그 어떤 행동이라도 멀리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것을 차지하려는 탕자가 되곤 한다. 그러나 탕자임을 발견한다면 즉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는 탕자가 되자.

 

집을 떠나지 않은 큰 아들의 입장으로 세상을 성실하게 살아왔다면, 도덕적 기준이나 세상 이익에만 마음을 두지 말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타락한 동생이라도 진심으로 반겨줄 줄 아는 형이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