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복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

청죽골 2005. 7. 8. 01:06

복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

 

온 세상이 온통 복만을 좇아가는 사람들로 가득 찬 것 같다.

복이라면 산 사람도 죽여서 제 복을 차지하지나 않을까 겁이 날 정도다.

실제 보험금 타려고 남편죽이고, 자식도  죽이려던 악마의 짓거리 같은 사건

도 일어나지 않았던가?

 

효자입네 조상님께 드리는 제사를 절대 빠뜨리지 않는 어느 친구에게 물었

.

 자넨 왜 제사를 그리도 잘 모시는가?

 다 복 받으려고 그러는 거 아닌감?

 

일년에 하루 초파일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절을 빠뜨리지 않고 가는 한 친구에게 물었다.

  자네 일년에 한 번은 꼭 절엘 가네 그려

 복 받으려면 초파일은 지켜야지

 

그런데 그 복이란 게 도대체 어떤 것인가를 물어보면 거의 하나같이 하는

말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란다.

 

어느 날 교회엘 열심히 다니는 한 교인에게 물었다.

 교회엘 그리 열심히 다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축복을 받으려고요.

 하나님 축복이 어떤 것이지요?

 가족들 다 건강하고, 적당히 돈 벌어 꾸러 가지 않고, 행복하게 살다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지요.

 

온 세상이 온통 복 받으려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그러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복의 모습을 봐야겠다.

 

마태복음5장에 나타나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복 받을 사람의 모습을 보자.

영어성경에는 그 복을 Beatitudes라고 해서 복중에서도 매우 큰 복(至福)

가르치고 있다.

먼저 하늘 나라에 가려면 영적으로 가난한 자(the poor in spirit)여야 한다.

영적으로 가난한 자의 모양이 어떨까?

잘 살고 잘 먹고 모든 것을 여유를 즐기며 사는 모습일 수가 있을까?

하나님께 위로를 받기 위해서는 신음하는 고통(those who mourn)

치루어야 한다고도 하셨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those who hunger and thirst)의 모습은 오히려 측은

할 정도의 모습이 아닐까?

()롭게 살려는 이유로 박해를 받는 받는 자들(those who are

persecuted)의 모습은 또 어떨까?

그들에게서 흔히들 말하는 복받은 모습 즉 잘 먹고 잘 사는 모습과 연상이

될 수가 있을 것인가?

 

흔히들 말하는 복있는 사람의 모습이 하나님이 보실 때 복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마태복음 5 11절과 12절에서

결정적으로  알 수가 있다.

예수님 때문에 당하는 온갖 모욕과 박해와 거짓 해악들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클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Rejoice

and be glad, because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다시 말해 이 땅에서는 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에 가까울 찌라도,

하늘에서는 상이 클 것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는 복은 잘 먹고 잘사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할 것이다.

어떤 목사님들이 이렇게 가르치는 것을 들었다. 하나님을 바로 믿으면 이

세상에서도 절대로 불행하게 살지 않는다. 물질에서도 복을 받아 행복하게

잘 살도록 하나님이 물질의 복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럴 듯해 보이긴 하다.

자 그러면 예수를 믿는다는 그 한 이유로 처참한 사자의 밥이 되어, 사지가

갈갈이 찢기고 피투성이로 죽어간 초대 성도의 모습은 저주를 받았다는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수 믿는다는 이 한가지 이유로 죽음과 폭력의 공포와

온갖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동포나 중국내의 수많은 가정교회 신자

들은 복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예수님이 가르치신 큰 복에는 어디에도 잘 먹고 잘사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든 이러한 세속적인 복을 강조하여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믿게 하기 위한 수단이라하더라도, 믿으면 세상적인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만하여서도 안된다.

나는 하나님을 아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방신을 섬기는 다른 민족들보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더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것을

역사를 통해 분명히 보게 되었다. 하나님을 알고, 그 아들 예수의 피로써

거듭난 영혼이 더 극심한 시련과 갈등의 어려움을 견뎌야 하는 일도 너무나

많이 보았다. 어찌 보면 차라리 믿지 않았다면 더 행복하고 더 멋있게 잘 살

수가 있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사탄은 안일하고 편안한 가운데 빠진 영혼을 향해 승리의 쾌재를 부르는

것이다. 잘 먹고 잘사는 영혼, 행복에 겨워하는 영혼을 사탄이 가장 사랑한

다는 뜻이기도 하다.

 

당신은 지금 평안합니까?

여기 누가복음 12 13-21절의 어리석은 부자(the Rich Fool)에 대한 가르

침을 보자.

여러 해동안 쌓아놓은 좋은 것들이 충분하니, 인생을 편하게 지내자. 먹고

마시고 즐겁게 보내자.

라고 말하고 있는 어떤 복받은 부자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보자.

이 바보야!(You Fool!) 바로 오늘 밤에 네 생명을 돌려달라고 할 것이다. (This very night your life will be demanded from you) 그러면 너를 위해 쌓아놓은 것들은 누가 취하게 되겠는가?

육신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 즉 세속적인 복을 만에 하나라도 찾거나 기원하

는 사람들을 향해, 성경에서는 이방인 즉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인간들(the pagan)로 표현하고  있다.(누가12:30)

 

이제 하나님의 도를 전할 때에 물질적인 축복을 이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물질적인 복으로 말하자면 미안하지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훨씬 더

많은 복을 받고 있음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지 않는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복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원망하고

신앙을 떠나버리는 사람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신앙을

가졌다고는 할 수가 없지만,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신앙이 있다고 가르치고

직분도 주고 믿음이 좋다고 부추기기도 한다)이 많은 것도 신앙=육신적인

축복이라는 잘못된 공식을 주입시켰기 때문이다. 마치 미신과  귀신인간

숭배에 가장 앞선 일본이 세계의 부국에 속하여 있다는 것에서 신앙의 회의

를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제 끝을 맺어야 겠다.

으로 대변할 수 있는 세상의 복 즉 잘 먹고 잘살고 쩡쩡거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태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려는 것이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다.

너희들은 하나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수가 없다.(You cannot serve both

God and Money) <누가복음16:13>

사람들 가운데서 높이 평가되는 것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는 혐오스런

것들이다.(What is highly valued among men is detestable in Gods sight.)<누가복음16:15>

 

이제 오늘 날 교회에서 부와 인간적 축복을 비는 행위는 마땅히 자제되어야

한다.

더 많이 바칠 수 있도록 더 큰 축복(?)을 주시옵소서

차고 넘치는 축복(?)을 부어 주시옵소서

이제 이런 기도들은 과연 신앙인으로서의 마땅한 것인가를 말씀안에서 다시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아닌 것이 분명한 것 같다.